모발이식, 하지 않았더라면 — 26살의 선택에 대하여(3년전 이식 후기, 경험담)
3년 전, 나는 26살이었다.
탈모 환자라고 부르기엔 어색했지만, 유전적으로 얇은 머리카락과 넓은 이마는 내게 늘 깊은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거울 앞에 서면 어쩔 수 없이 시선은 이마에 머물렀고,
그건 때때로 자신감을 깎아내리는 은밀한 칼날 같았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뒷머리의 모발을 이식해, 헤어라인을 채우고 이마를 좁히기로.
쉽지 않았던 결정, 그리고 고집
강남의 세 곳 병원을 찾았다.
그 중 한 곳은 나를 '초기 탈모'라고 진단했고, 나머지 두 곳은 "탈모는 아니다"라고 했다.
오히려 의사들은 조심스럽게 만류했다.
"나중에 진짜 탈모가 진행됐을 때 이식할 모낭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 이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보다 미래의 모낭을 걱정하는 것이 더 우스워 보였다.
결국 강남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명한 병원에서 수술을 결정했다.
절개식 수술, 그리고 눈에 남은 자국
비용을 아끼려 절개 방식을 택했다.
뒷머리를 바리깡으로 밀고, 긴 띠 모양으로 피부를 절개해 모낭을 채취하는 방식이었다.
수술은 계획대로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뒷머리엔 약 7cm 정도의 뚜렷한 수술자국이 남았다.
짧게 머리를 치면 드러나기 때문에, 나는 항상 뒷머리를 길게 기르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바버 스타일처럼 짧게 자를 생각은 없었으니 실질적인 불편은 없었다.
하지만 '흉터'라는 존재는, 머리를 만질 때마다 내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여기, 니가 했던 선택이 남아있어.' 라고
기대와 현실의 거리
생착률은 기대 이하였다.
비포 앤 애프터를 비교해도 뚜렷한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앞머리 숱을 채우고 싶었고, 이마를 조금이나마 좁히고 싶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친구 중 한 명은 내 얇은 머리카락을 보며 "서양인 모발 같아서 부럽다"고 했지만,
그 말은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내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돈은 돈대로 썼고,
몸에는 흔적만 남았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돌이켜보면, 의사들의 조언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후회할 수도 있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너무 어렸고, 너무 성급했다.
'지금'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미래의 여지를 스스로 줄여버렸다.
탈모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지금도 어디서 '탈모 같다'는 말을 듣진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마에 손을 얹을 때마다, 그리고 뒷머리의 흉터를 손끝으로 느낄 때마다
가끔 생각한다.
'조금 더 기다릴걸.'
'조금만 더 자신을 받아들였더라면.'
후회라는 이름의 성장
모발이식은 실패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하지만 이 선택은 나를 조금은 성숙하게 만들었다.
불완전한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성급함이 때로는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나는 이 작은 흉터를 통해 배웠다.
다음번 어떤 결정을 앞두고 망설일 때,
나는 이 뒷머리의 얇은 흉터를 기억할 것이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 작은 상처가,
조용히 내게 속삭일 것이다.
"급할 필요 없어.
조금은 기다려도 괜찮아."